당신은 영화관에 앉아 있습니다. 화면에는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, 웅장한 금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. 혹은 영롱한 종소리만 듣고도 마법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낍니다.
이 모든 마법을 부린 사람은 단 한 명, 존 윌리엄스(John Williams)입니다. 그는 단순히 영화 배경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.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의 영상을 청각적인 언어로 번역해 낸, '헐리우드의 베토벤'입니다.
오늘은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인 이 살아있는 전설이 어떻게 <스타워즈>의 우주와 <해리포터>의 마법 학교를 음악 하나로 연결했는지, 그 거대한 세계관을 분석해 봅니다.

1. 우주를 지배하는 힘: 스타워즈와 '라이트모티프(Leitmotif)'
"음악이 없는 스타워즈는 상상할 수 없다. 그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지구와 같다." - 조지 루카스
존 윌리엄스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개념은 바로 '라이트모티프(Leitmotif)'입니다. 이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유래한 기법으로, 특정 인물이나 장소, 감정에 고유한 멜로디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.
🎵 연결고리 1: 다스 베이더와 임페리얼 마치
- 캐릭터의 청각화: <스타워즈>의 'Imperial March'를 들어보세요. 굳이 화면을 보지 않아도 다스 베이더의 검은 망토와 기계적인 숨소리, 그리고 제국군의 압도적인 군화 소리가 연상됩니다. 존 윌리엄스는 낮고 위협적인 금관악기(브라스)를 사용하여 악당의 권위를 음악으로 조각했습니다.
- 포스(The Force)의 테마: 반대로 루크 스카이워커가 석양을 바라볼 때 흐르는 'The Force Theme'은 호른의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해 현악기로 확장됩니다. 이는 희망과 모험, 그리고 영웅의 운명을 상징합니다.
2. 마법을 부리는 소리: 해리포터와 '첼레스타(Celesta)'
"헤드윅의 테마가 들리면, 우리는 이미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타고 있다."
<스타워즈>가 웅장한 금관악기의 축제였다면, <해리포터> 시리즈에서 존 윌리엄스는 전혀 다른 악기를 꺼내 듭니다. 바로 '첼레스타'입니다.
🎵 연결고리 2: 헤드윅 테마(Hedwig's Theme)의 비밀
- 신비로움의 극대화: 첼레스타는 피아노처럼 생겼지만, 금속판을 때려 영롱하고 신비로운 종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. 도입부의 "띠링~ 띠리링~" 하는 멜로디는 머글(인간)의 세계에서 마법의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합니다.
- 변주의 미학: 존 윌리엄스는 이 신비로운 도입부 뒤에 빠른 현악기 연주를 붙여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듯한 속도감을 부여했습니다. <스타워즈>의 우주적 영웅 서사가 <해리포터>에서는 환상적인 마법 동화로 변주된 것입니다.
3. 단순함의 미학: 죠스(Jaws)와 스필버그의 50년 우정
"존, 농담하지 마세요. 이게 정말 그 음악이라고요?" - 스티븐 스필버그(처음 곡을 듣고)
존 윌리엄스의 천재성은 복잡한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, 극도로 단순한 음표에서도 빛을 발합니다.
🎵 연결고리 3: 단 두 개의 음표 (E-F)
- 공포의 원초적 본능: 영화 <죠스>의 테마는 '미-파-미-파' 단 두 개의 음이 반복될 뿐입니다. 하지만 속도가 빨라지고 볼륨이 커질수록 관객은 엄청난 공포를 느낍니다.
- 보이지 않는 공포: 당시 기계 상어가 자꾸 고장 나서 상어를 많이 보여줄 수 없었던 스필버그에게,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구세주였습니다. 상어가 화면에 없어도 음악만으로 상어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기 때문입니다.
4. 동심의 비행: E.T.와 쥬라기 공원
"그의 음악은 우리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든다."
존 윌리엄스의 음악적 특징 중 하나는 '경외감(Awe)'의 표현입니다.
- E.T. (Flying Theme): 자전거가 하늘로 떠오르는 순간, 음악도 함께 비상합니다. 현악기의 급격한 상승 선율은 중력을 거스르는 짜릿함과 순수한 동심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.
- 쥬라기 공원 (Main Theme): 공룡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음악을 기억하시나요? 공포가 아닌 '아름다움'과 '웅장함'입니다. 그는 공룡을 괴물이 아닌, 대자연의 경이로움으로 해석했고 이를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로 표현했습니다.
마치며: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에게 경의를
존 윌리엄스는 영화 음악이 단순히 영상의 배경(Background)이 아니라, 영상과 대등한 위치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'보이지 않는 배우'임을 증명했습니다.
오늘 밤,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존 윌리엄스의 베스트 컬렉션을 담아보세요. 눈을 감는 순간, 당신은 엑스윙을 타고 우주를 날거나 호그와트의 연회장에 앉아 있게 될 것입니다.
💡 에디터의 TMI (거장의 기록)
- 오스카 노미네이트: 존 윌리엄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무려 54회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. 이는 월트 디즈니 다음으로 역대 2위의 기록이며,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는 단연 1위입니다.
- 올림픽 음악: 1984년 LA 올림픽, 1988년 서울 올림픽,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,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의 테마곡을 모두 그가 작곡했다는 사실, 알고 계셨나요? 88 서울 올림픽의 <The Olympic Spirit>은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멜로디입니다.